추모 글 남기기 : Kondolenzbuch  

이종현+우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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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운섭 댓글 0건 조회 13,044회 작성일 20-05-23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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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영준 동지를 보내며

정말 오랜만에 옛날 얘기로 돌아가네. 우리가 광산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알게 된지도 벌써 55년 지났네. 힘든 지하 노동을 참아가며 우리는 밝은 훗날을 위해 억세게도  살아왔지.

광산 임기 직전에 갑자기 사라진 영준이, 화물선 타고 1년 동안 세계를 돌면서 고생을 직사지게 했지만 세상을 많이 배웠다면서 난데없이 찾아왔슬 때 우리는 눈물겹도록 반가워 했지. 그날 엄지손가락 만한 Azteken 석상 둘을 선물로 두고간것, 우리는 그 석상을 보면 언제나 자네 생각에 깊히 잠긴다네.

그리고 얼마 후 찾아와 대학에 적을 두었다고 했을때 총명한 자네 장래에 무한한 희망을 보면서 축하 의잔을 신나게 나눈 생각이 나네.
전공은 사회학을 하겠다고 해서 자네와는 노동의식, 사회정의,  한반도 분단에 대한 생각이 지난 광산 기숙사생활 때부터 제바로 잘 통한 것이 아닌가 싶네.

70년대 초 유신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와 노동해방 남북 통일을 위하여 민건, 노연과 같은  운동 단체에서 활약할 때 자네의 열정은 대단했지. 학업을 제쳐 놓고 행사나 데모에 참석은 물론 노연통신, 해방, Funke der Arbeiter 등의 의식화 출판물에 몰두했지. 그 역사적인 자료는 자네를 위한 기록물로 영원히 남을 것이네.

영준이 자네는 항상 모든 것을 결정한 후 나에게 알려줬는데 자네 결혼식 때도 그랬지...이희세 선생이 주례를 맡으시는데 사진사가 없다고. 나는 그날 열심히 찍었으나 사진기 조율을 잘 못해 완전히 실패했고 예쁘게 차려 입은 신부 고윤실 씨에게는 미안해서 할 말이 더 없었지요.

영준이 자네를 알기 위해 아니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네.
내가 독일에 온 후 말을 놓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영준이 자네 밖에 없네. 우리 둘이만 있을 땐 나를 보고 "형아"라고 불렀지. 나이 차이인 듯 한데.... 언제인가 옛날로 돌아가 6.25 동란 때 이야기가 나왔지. 우리 집안은 그때 왕창 당했다고 했는데 자네는 아주 무표정하게 "형아 나는 6.25 때 혼자서 남하 했어."
10여세 나이로 의지할데 없이 무정한 세상을 홀로 살아온 영준이. 과거를 물을 때 왜 그렇게도 불쾌한 표정을 했는지 알만하네. 자네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따뜻한 우정으로 대하지 못한 것 후회가 막심하네.

내일 5월 23일 자네를 떠나보내는 영결식을 친지들이 모여 함께 갖게 되네.
자네가 사라생전 사랑한 고윤실 씨, 민지, 노리에게 슬픔을 넘어 행복한 앞날이 오도록 손모아 빌겠네.

2020년 5월 23일
우즈라 +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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